승진자 몰아주기 평가 (직급체계, 동료평가, 임금중심)

인사평가 면담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B 등급 결과를 확인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허탈해하는 직원의 모습. 승진자 위주의 불공정한 평가 관행과 핵심 인재의 상실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팀장님이 평가 면담 자리에서 "올해는 B 등급이지만, 내년엔 A 줄 테니 이해해달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아마 많은 분들이 허탈함을 느꼈을 겁니다. 저 역시 반도체 산업에서 11년간 인사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며 이런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성과가 뛰어난 후배보다 승진을 앞둔 선배에게 먼저 높은 등급을 주는 일명 '평가 돌려먹기' 관행은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 문화 깊숙이 자리한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됩니다. 오늘은 이 승진자 몰아주기 인사평가가 왜 발생하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실질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다단계 직급 체계가 만든 승진 압박

한국 기업 대부분이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직급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3~4년마다 기계적으로 승진시켜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승진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대부분 연차나 선배라는 이유로 순서대로 올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직장 입장에서는 선배를 두고 후배를 먼저 승진시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제가 해외 인력 운영을 담당할 때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성과가 명백히 우수한 후배 직원을 승진 후보로 올리려다 "조직 내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선배 순서대로 승진시킨 적이 있습니다. 당시 후배 직원은 결국 6개월 뒤 이직했습니다.

이런 다단계 직급 체계는 사실상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사람 등급(Person Grade)'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직무의 가치나 역할의 중요도가 아니라, 그저 회사에 얼마나 오래 다녔는지가 직급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출처: 한국노동연구원), 국내 기업의 약 73%가 여전히 연공서열 중심의 승진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조직 내 공정성 인식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평가와 승진이 뒤엉킨 악순환 구조

많은 기업이 승진을 임의로 결정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평가 결과로 승진을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예컨대 특정 기간 동안 B 등급 이상을 몇 회 이상 받아야 승진 대상이 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역설적으로 '승진 연계 평가(Promotion-linked Evaluation)'라는 왜곡된 관행을 낳았습니다. 평가가 승진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승진 대상자에게 맞춰 평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겁니다.

제가 인사 기획 업무를 수행하며 가장 답답했던 순간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평가 배분율이 엄격하던 시절엔 '이번엔 A 대리 차례'라는 식의 순번제 평가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최근 배분율이 자율화되거나 절대평가 요소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온정주의라는 한국 특유의 정서적 장벽이 견고했습니다. 승진을 앞둔 선배를 외면하고 성과가 뛰어난 후배에게 높은 등급을 주는 행위가 리더에게는 일종의 '배신'이나 '조직 관리의 실패'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평가의 본질인 '성장과 피드백'이 사라지고, 평가는 단지 승진 명분을 만드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결국 평가 무용론이 확산되고, 핵심 인재들은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고 조직을 떠나게 됩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출처: 고용노동부), MZ세대 이직 사유 중 '불공정한 평가 및 보상'이 상위 3위 안에 포함되며, 특히 기술직 인재일수록 이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공정성 회복을 위한 세 가지 전환

그렇다면 승진자 몰아주기 평가를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저는 현장에서 체감한 바를 바탕으로 세 가지 핵심 전환을 제안합니다.

첫째, 직급 체계를 사람 등급에서 직무 등급(Job Grade) 또는 역할 등급(Role Grade)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직무 등급이란 수행하는 일의 가치와 난이도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연차라도 핵심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직원과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의 등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직무 등급 도입이 어렵다면, 사원-선임-책임 같은 역할 등급으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의 변화가 곧 승진이 되는 구조에서는 정기 승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둘째, 평가와 승진의 고리를 끊고 동료 평가(Peer Evaluation)를 도입해야 합니다. 평가는 승진의 최소 기준으로만 활용하고, 실제 승진 결정은 동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B 등급 이상을 받은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명 이상의 동료에게 "누가 다음 직급에 적합한가"를 물어보는 겁니다. 저는 이 방식에 대해 처음엔 회의적이었습니다. "서로 감시하는 문화를 만드느냐"는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부 팀에서 시범 운영해본 결과, 동료 평가는 술자리나 친분보다 실제 업무 능력과 협력 태도를 더 중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팀장 입장에서도 승진 대상자에게 특별히 높은 점수를 줄 필요가 없어지면서 평가가 훨씬 공정해졌습니다.

셋째, 승진 중심 인사관리에서 임금 중심 인사관리(Compensation-centric HR)로 전환해야 합니다. 임금 중심 인사관리란 승진에만 의존하지 않고, 누적식 보상과 비누적식 인센티브를 조화롭게 활용하여 임금을 인사 결정의 핵심 요소로 삼는 방식입니다. 과거처럼 불공정한 평가 후 승진으로 보상하는 게 아니라, 매년 평가와 연계된 임금 인상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하는 겁니다. 승진자 몰아주기가 없어지면 평가는 공정해지고, 매년 임금 인상이 평가와 연계되면서 직원들의 공정성 인식도 높아집니다. 실제로 제가 담당했던 조직에서 임금 중심 인사관리를 적용한 후 핵심 인재 이탈률이 약 30% 감소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임금 중심 인사관리를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시장 임금 데이터 기반 보상 설계: 직무별 시장 가치를 반영한 임금 테이블 구축
  2. 성과 연동 인센티브 비중 확대: 누적되지 않는 인센티브를 통해 매년 성과 보상 체감도 향상
  3. 전문직군 경력 경로 다양화: 관리자가 아니어도 전문성으로 높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경로 마련

결국 이 문제는 단순한 인사 제도 개편을 넘어 조직 문화의 체질 개선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평가가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성장을 돕고 기여도에 걸맞은 보상으로 이어지는 '신뢰의 기틀'이 되어야 합니다. 승진이 유일한 보상이 아닌, 전문성 강화와 처우 개선이 병행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HR 기획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다만 동료 평가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높은 수준의 심리적 안전감과 객관적 피드백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조직에서 동료 평가는 자칫 인기 투표나 정치적 담합으로 흐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임금 중심 인사로의 전환은 이상적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직급이 갖는 사회적 위신과 심리적 보상을 대체할 만큼 정교한 시장 가치 기반 보상 체계가 구축되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제도의 외형을 바꾸는 것보다, 성과를 정의하는 방식에 대한 전사적 합의와 리더의 평가 역량을 상향 평준화하는 실무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 참고: https://youtu.be/TrNXbHgJKoI?si=8cLLETF6U0UpUuNw